기타

손광보형님 (2021년2월12일)

Auolelius 2021. 2. 12. 06:51

나와

광보형님과는

내가

국민학교 3학년, 

 

피란 시절인

대전의 오류동에

초가집을 짓고

살 때부터

알게 되었다. 

 

우리집 길 건너에

형님과

형님의 아버지께서

살고 계셨었는데, 

 

형님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대전시

서울종합중고교의

고교생으로

다니게 되셨었고,

나중에는

용두동의

우리집 같은방에서

살면서

친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며

살다가

형님은

한국신학대학교에

입학,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기

직전에

아버지의 권유로

천주교로 개종,

 

아버지의 대자,

부모님의

양자가 되었었다.

 

형님은

대전 프란치스코

수도원 원장님의 비서

목동 성당의

사무장으로

근무하셨었고, 

 

나는

방학 때마다

수도원 성당으로

가서

형님을 도우며

수도원 밥을

먹고 지내다 

전주의 집으로

귀가하곤 했었다.

 

1961년3월26일

형님의 권유로

재속 제3회에 입회,

 

대학을 졸업하고

군을 제대한

 

1969년1월10일

허원을 했었고,

 

항상

나의 신변

잡다한 내용이나

고민을

상담해주셨었다. 

 

그 후 형님은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데

기여하셔서

중앙회 본사의

기획부장과

대전 연수원의

원장과 교수로

근무하셨었고

정년 퇴임하셨다.

 

그러셨던 형님이

이젠

86세의 연세가 되어

천당에 가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못드리다가,

 

큰 맘 먹고

죽기살기로

방문하여

마음이 흐뭇하다. 

 

형님과의

대면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서로 나누며

이별의 인사를

대신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1959년 4월19일

군시절의 형님.

좌측은 강원모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