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ke Riding/서울

젊은이들이여 희망을 가져라?[2012년6월6일]

Auolelius 2012. 6. 6. 09:03

 

 

나는 이제 7 이란 숫자에 접어들었다.

요즘 국토종주길과 4대강종주길을

혼자서 라이딩하면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보며

여러가지 상념에 빠져든 때가 많았다.

 

6 25 전 고향인 이북 청진에서

남으로 온가족이 내려와

서울에서 6 25사변을 만나

이미 끊어진 한강 인도교를 바라보며

위태로운 한강 철교를 건너

노량진역에서 화물차 지붕위에 올라 이젠 안심이다 라고

맘을 놓을 즈음

안양역에 화물차가 도착하자 마자

후퇴하는 국군을 수송하기 위해 피란민 전부를 회물차에서 하차케 하여

안양에서 부터 부산까지의 험난한 피란길이 시작됐었다.

 

매일 걷고 또 걷고 수많은 피란민대열에 끼여

길가에 힘들어 버려지는 짐들과

강보에 쌓여 버려진 갖난아기들.

부모를 잃고 울부짖는 수많은 애들을 바라 보면서 

 

어린 내가 발이 아퍼 힘들어서 못 걷겠다고 울며 뗑깡을 부려 봐도

잘못하다간 나도 부모님을 잃게 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앞선데다 

내힘만으로 걷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날 업어 줄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모든걸 포기하고 그저 한없이 눈물을 삼키며 걸었었다.

허기는 왜 그리도 자주 지는지

넘 배가 고파서 물만 마시다가

소나무잎을 씹어 먹고, 나물들을 캐먹으며 허기를 달랬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부산, 대구, 김천, 봉곡동 등등 이곳 저곳 옮겨다니느라

맨 뒷줄에 앉은 탓에

칠판  글씨는 물론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들리지 않아

공부는 뒷전인데다

넘 배가 곺아 지쳐서

3학년 초까지 구구단도 못외워서

산수점수는 매번 30점도 못 받았었고

 

부모님의 직장이 대전으로 안정 되어

대전선화국민학교 3학년2학기부터 성적이 좋아져서

점점 상위권으로 접어 들어

대전중학교에 입학할 당시엔 반에서 2등[전교15등]이었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직장[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전으로

또 다시 전학을 가게 되어

중1, 2학기에 전주북중(36회)으로 전학하여 한학기 내내

말씨 때문에 지금의 왕따 같은 놀림을 휴식시간마다 당했었지만

이를 악물고 맞 부닥쳐서 극복하고 헤어났었다.

 

전주고등학교(39회)와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1기]를 졸업한 후

 

ROTC 포병소위로 임관[우등상]

포병학교[수료 우등상]를 수료한 후

최전방 쌍오포의 전포대장 중위로 예비역 소집 해제

  [ROTC는 제대라고 하지 않음]

 

수사신부가 될 꿈을 안고

기도와 봉사에 열중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년만 부모님의 뜻을 따라 회사 생활을 하기로 맘먹고

방향을 틀어

남들보다 1년 뒤늦게 공채로 안양의 한일나이론에 입사.

입사한지 1년도 안되어 동양나이론과 합병되어

합병당한 회사원의 쓰라린 고통을 모두 극복하고

1년 뒤에 노조 문제로

본사 영업부로 발령받은 뒤부터  

지방대출신이라는 서러움을 피눈물나도록

밤낮으로 일에 매달려 씨름하며 남들보다 몇배 노력하여 극복하고.

급기야 나의 마당발 기질을 인정 받게 되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A/S 와 Claim처리 및 Sales Promotion활동을 적극 전개하며

부장(공무부장을 제외한 회사내의 모든 부장을 섭렵)까지 승승장구 하였지만

역시 지방대출신은 중역으로의 진급이 힘들었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은

뒤의 여러회사에서의 CEO로서의 발판을 만들었었다. 

 

당시엔 전국에 국사립대학교도 몇 안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세월을 허비하는 분은 거의 없었는데...

 

요즘엔 세상에 널려 있는게 대학이고

박사출신도 넘 흔해서 속된 말로 똥박이 되다시피 되어 버렸는데다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처럼 힘들어져서

젊은이들이 희망을 접고

한숨만 내쉬는 세상이 되었으니

정말 큰일이 아닐수 없는데 

이분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로만 아무리 외쳐 봐야 무슨 소용이나 도움이 되겠는가?

 

물론 실업자 문제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은

부모가 뼈빠지게 벌어서 비싼 등록금을 대느라 노후대책도 못세운 판에

자식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해 빈둥대는 모습을 쳐다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자식들의 심정은 부모보다 더 할것이다.

 

나도 회사를 옮겨 다닐때마다

어떤땐 몇년을 백수로 지내 봐서 그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수 있지만

내 경우는 내가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실업자가 되었던 경우라서

아예 취직도 못해 본 경우와는 차이가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하는 정부의 대책과 내용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취직된 통계 숫자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황한 내용이 많고

일자리란게 정식 직원이 아니고 임시직인데다

그나마도 알바 수준이니...

 

이런판에 무슨 희망이 어떻고 떠들어 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그저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이럴때 집에서 걱정과 근심이 더하여 자포자기 하지 말고

돈이 별로 크게 들지 않는 산엘 자주 오르던가

아님

아파트에 버려진 자전거라도 타고

잔차길을 달리면서

대자연의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시며

몸과 맘을 추스려 보는게 좋다고 판단되어 권해 보고 싶다.